나는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에서 줄을 선다. 키오스크는 작은 화면의 태양처럼 반짝이며, 아주 침착하게 묻는다. 매운맛 몇 ‘단계’로 할까요. 1단계, 2단계, 3단계—뜨거움마저 관리할 수 있다는 듯. 옆의 젊은이는 점원에게 거의 들리지 않는 존댓말로 확인하고, 돌아서서는 친구의 이름을 반말로 던진다. 언어는 여기서 옷 같다. 예의를 위해 입고, 친밀함을 위해 벗는다. 공기에는 고춧가루의 달콤한 자극이 떠다닌다. 보이지 않는 규칙집이 사람들 위에 고르게 내려앉는 것처럼.
어떤 질서는 선포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이 매끈하게 굴러가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매일 사용하지만, 어디서 시작되는지 잘 모른다. 문장 끝, 자리, 멈춤, “지금은 말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언제 커져야 하고 언제 작아져야 하는지, 어디는 곧장 들어가도 되고 어디는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
매운맛, 단계로: 느낌을 옵션으로 바꾸는 법
“매운 걸 원해요”라고 하면, 화면은 “단계를 선택하세요”라고 답한다.
조롱이 아니라 습관이다. 모호한 감각을 선택 가능하고, 반복 가능하고, 전달 가능한 무언가로 번역하는 방식.
단계는 가드레일처럼 작동한다. 나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숫자 하나를 고르면 된다.
말하기, 높이로: 거리는 곧 존중
한국어에서 존댓말과 반말은 단순히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화자 사이의 ‘거리’를 높이로 치환한 시스템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높은 계단에 있는지, 같은 층에 있는지, 아니면 내가 내려다볼 수 있는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이 대화의 ‘계단’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결정하기 위한 필수적인 데이터 수집이다.
직함, 계단으로: 이름 대신 위치
이름 뒤에 붙는 것은 보통 이름보다 무겁다.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위치로 불린다.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그 계단이 명확할수록 행동 지침도 명확해진다. 어디까지 보고해야 하는지, 누구의 말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지.
계단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계단 위에 서 있는 ‘진짜 사람’을 가리기도 한다.
측정되지 않는 것들의 자리
단계와 높이와 계단이 세상을 매끄럽게 만들지만,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종종 그 단계들 사이에 끼어 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농담, 높낮이를 따지지 않는 위로, 직함 없이도 서로를 알아볼 때의 안도감.
시스템은 우리에게 숫자를 고르라고 유혹하지만, 우리는 가끔 그 숫자가 담지 못하는 ‘진짜 맛’을 그리워한다.
질서가 너무 선명해질 때, 우리는 문득 그 질서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어진다.
아무런 단계도, 높이도, 계단도 없는 곳으로.
Dual Sun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그 사이의 공간이다.
시스템이 우리를 규정할 때, 그 규정 안에 다 담기지 않는 ‘나’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높이를 넘어서, 진짜로 만날 수 있는가.